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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두바이를 방문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두바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중앙로 양편에는 전세계 크레인이 다 모인 것 같았습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이었습니다.

도로 양편으로 각양각색의 고층빌등들이 솟아올랐고, 이 중에는 우리나라 건설업체가 짓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버즈 두바이’도 있었습니다.

두바이 중앙로를 따라 늘어선 고층건물. 이 사진은 http://greenvi.tistory.com/58에서 빌려왔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야자수 잎 모양의 인공섬(팜 주메라)을 만드는 팜 프로젝트였습니다. 인공섬을 굳이 야자수 잎 모양으로 만든 것은 해안선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 이곳에 지은 호화빌라 2000여 채가 제각각 자신만의 해변을 갖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002년 초, 팜 주메라의 빌라가 미리 분양됐을 때, 데이비드 베컴 등이 계약을 하는 등 2000여 채의 호화빌라가 순식간에 팔려나갔습니다.  

두바이 방문 당시, 사막크루즈 관광을 했습니다. 두바이 도심에서 채 1시간도 되지 않은 곳에 광대한 사막이 있었습니다. 별이 총총 빛나는 사막에서 저 멀리 불야성을 이룬 두바이를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두바이는 미국의 라스베가스처럼 사막 위에 지어진 기적의 도시였습니다.

야자수 잎 모양을 딴 팜 주메라(위)와 세계지도 모양을 딴 인공섬 월드.


이후 ‘버즈 두바이’의 높이가 나날이 높아지고, 또 그곳에 세계 최대의 테마파크(두바이랜드)가 들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그날 저녁 불야성을 이루던 두바이를 떠올렸습니다.

두바이는 인간의 상상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멋진 사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초에 진주잡이로 연명하던 초라한 어촌을 이처럼 멋진 신세계로 탈바꿈시킨 두바이의 통치자 셰이크 모하메드의 리더십에 존경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두바이가 내년 5월 30일까지 6개월간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제 2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로 요동치던 국제 금융시장이 요며칠 사이 진정되는 모습입니다.

두바이가 사실상 ‘국가부도’를 맞음으로써 ‘사막의 기적’으로 칭송되던 두바이의 개발모델은 순식간에 ‘사상누각(砂上樓閣)’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두바이 개발모델을 실패로 단정하는 신문기사


어찌보면 두바이의 개발모델은 천문학적인 빚더미 위에 세워진 모래성이었는지 모릅니다. 튼튼한 경기기반없이 부동산 붐을 조성하고, 외자를 끌어와 거품을 일으켜 연명하는 경제가 오래갈 리 없습니다.  

실제 두바이의 명목 GDP는 지난해 821억 달러인 데 비해 채무는 800억 달러를 훨씬 웃돕니다. 또 전체 산업에서 도산매(38.6%)와 부동산․사업서비스(14.7%) 등이 절반을 넘는 등 매우 취약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결국 두바이도 우리나라가 1997년 IMF외환위기 직후 그랬던 것처럼, 알짜배기 자산을 떨이로 팔아야 할 것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일, “두바이월드가 그동안 핵심 자산매각을 기피해 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를 피해 나갈 여지가 줄어들었다”며 그랜드 바겐세일이 임박했음을 예고했습니다.

이렇게 몇 년간 자산을 팔고, 구조조정을 거치면 두바이도 정상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형 개발모델이 IMF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신뢰를 잃은 것처럼, 두바이의 개발모델도 이번 ‘두바이 쇼크’를 계기로 용도폐기 처분될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두바이를 불가능한 모래성쯤으로 치부해도 되는 것일까요.

두바이가 속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는 세계 3위의 석유 생산국이지만, UAE내 석유 매장량 중 95%는 7개 토호국의 맏형격인 아부다비에 매장돼 있습니다. 변변치 않은 석유 매장량에다 그나마 이것도 언제 바닥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두바이는 새로운 발상과 도전, 실험에 나섰습니다.

그것은 석유로 벌어들인 수입을 재투자해 두바이를 관광, 금융, IT, 의료, 교통 등을 갖춘 중동의 허브로 만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다른 중동국가와 달리 과감한 개방정책으로 사람을 모으고, 법인세 면제 등 적극적인 친기업정책으로 해외자본을 끌어들였습니다.

가난한 어촌마을이었던 옛 두바이(왼쪽)를 지금처럼 만든 것은 상상력과 실험정신이었다. 두바이는 실패했어도 그 상상력은 보존돼야 한다


덕분에 UAE의 7개 토호국 중 하나에 불과한 작은 도시가 중동의 허브로 자리잡을 만큼 국가브랜드가 높아졌습니다. 옛 중세인들은 “도시에 가면 자유의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필자가 경험한 두바이가 바로 그랬습니다. 폐쇄적인 다른 중동국가와 달리 두바이에는 자유의 냄새가 났고, 또 어떤 나라보다 안전했습니다. 도시 전체가 상상력과 활기로 가득찼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이번 ‘두바이 쇼크’를 계기로 부동산거품에 의존한 두바이식 개발모델은 용도폐기되더라도, 가난한 작은 어촌마을을 지금의 두바이로 만든 인간의 위대한 상상력까지 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한바탕 빚잔치를 끝내고, 몇 년 뒤 두바이가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두바이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그 끝없는 상상력과 실험정신에 있을테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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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쩜영